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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이념적 자살

작성자 ㅇㅇㅇㅇ    104.236.***.233
등록일 18.12.25 조회수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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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낭만적인 죽음' 혹은 '숭고한 죽음'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알다시피, 실재적인 의미에서든 상징적인 의미에서든 죽음 혹은 비존재에는 낭만적이고 숭고한 요소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이번 글의 주제이다.

 

진보주의자들을 보다 보면 합리적인 견지에서 보았을 때 전혀 자신의 세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초창기의 메갈리아가 현재의 '워마드'로 귀결된 지금 상황에서도,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여전히 '한남'이라는 용어에 집착하거나, 남성혐오를 '미러링'의 견지에서 정당화하거나, 아니면 남성혐오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도피적 주장에 집착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멘털리티를 쉽게 '메갈 못 잃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근 예스24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본인이 자신의 머릿 속에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러한 주장은 현실 속에서 이미 그 스스로를 성대결적 프레임에 가두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런 프레임에 갇힌 순간부터 (적어도 젊은 세대 내에서의) 성별 간 제로섬 게임, 아니 심지어 마이너스 섬 게임을 각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에 합리적인 정치세력이라면 그런 짓을 각오하지 않는다.

 

일종의 '이념적 자살충동'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가설 외에는 마땅히 설명하기 힘든 행동이다.

 

물론 이러한 이념적 자살충동을 현실의 레벨에서 진짜로 실현시킨 유명한 사례는 일본의 저명 소설가이자 극우 논객으로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이다. 그는 말년에 자위대 본부를 점거한 채 천황제의 복권을 위한 총궐기를 외치다가 할복자살하는 어이 없는 최후를 맞이했다. 물론 그의 주장은 극우적이었지만, 그의 '공허한 죽음'의 '낭만성'에 매료되고 심정적으로 공명한 것은 실제로는 현실의 우익세력 보다는 오히려 극좌파였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동시대 극좌 학생운동 세력이었던 전공투에 심정적인 공감을 여러 차례 표명하기도 했다. 비록 미시마 유키오처럼 물리적으로 '자살'하지는 않았지만, 후일 일본의 극좌 세력 역시 고립을 자초하는 무리한 테러를 통해 상징적인 형태로 일본 사회 내의 '자살'을 감행했다. 비슷한 시기 서구권에서도 적군파, 붉은여단 등의 극좌 테러조직이 폭탄테러, 암살, 납치 등의 행각을 저지르며 스스로 자멸해가고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유럽 내에서 테러로 인한 연간 사망자수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1970~1990년대이며 이중 상당수는 좌익세력이 자행한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같이 낭만적 죽음에 변태적으로 집착한 극우파나 사회적 자살 혹은 고립을 스스로 감행한 극좌파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도 진심으로 믿지 않는 공허한 도덕적 동기에 대한 냉소적 집착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도덕적 공허감을 보상받기 위해 순교자로서 자신의 덧없는 존재를 불사르는 행위에 집착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상황 속의 은폐된 진리를 드러낼 수 있다는 도착증적인 믿음을 신봉한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이를 '실재의 열정(passion of the real)'이라고 부르며 급진세력이 경계해야 할 위험한 유혹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나는 한국에서 진보가 젠더이슈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이러한 과거의 비극적 역사를 희극적인 형태로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페미니스트의 예를 들자면, 이들은 젊은 남성들을 자신들이 즐겨 인용하는 페미니즘 이론 상에서 '맨박스'나 '가부장제'의 공통적인 피해자로 묘사하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실천태에서는 이들 남성에 대해 '모욕주기'나 '망신주기'를 감행하는 것을 일종의 급진적 실천으로 받아들이는 정신분열증적인 행태가 만연해 있다.

 

나는 이것이 급진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앞서 '이념적 자살충동'이라고 부른 것의 또 다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도덕적 동기를 스스로 배반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신의 도덕적 동기의 공허함과 방황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위악적 행위를 과시한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드러내는 진리는 상황 속의 은폐된 억압이 아닌 자기 자신의 자살충동이다. 이들의 설익은 위악에 비하면 '실제로'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가 차라리 더 용기 있게 느껴질 지경이다.

 

물론 좌익테러와 좌파의 고립을 겪은 지난 날의 좌파 철학자들이 이미 여러번 지적했지만, (물리적으로 감행했건 상징적으로 승화됐건) 이념적 자살충동은 그 본질에서의 '비겁함'의 위장된 형태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정말로 자신의 대의를 믿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대의를 보편화하기 위해 의지를 발휘하지, 스스로를 위악적인 방식으로 주변화하는 것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내는 데 긴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박가분, <진보의 이념적 자살>


https://blog.naver.com/paxwonik/221411795276


아 참고로 박가분씨는 민주당보다 더한 진보인 정의당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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