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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사라진 정리해고의 천국 대한민국

저자 구은회 | 매일노동뉴스 기자
등록일 12.05.14 조회수 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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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3일 대법원 1호 법정 앞. 콜트·콜텍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날의 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지난 2007년부터 5년째 복직투쟁을 벌여온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초조한 얼굴들도 눈에 들어온다.
콜트와 콜텍은 쌍둥이 회사다. 기타 제조업체인 인천 부평의 콜트악기와 자회사인 대전 콜텍의 사용자는 동일인이다. 지난 2007년 비슷한 시기에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공장이 중국 등으로 이전해 일터가 사라진 점도 똑같다.
싼 인건비를 좇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국내 사업장을 폐쇄한 콜트·콜텍의 사업주는 매년 흑자를 내다 지난 2006년 ‘딱 1년’ 적자가 났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4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조항은 정리해고의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요구하고 있다. 단 1년의 적자 발생이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느냐, 이것이 이날 재판의 관전 포인트였다.
과연 재판부는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날 재판에서 판결은엇갈렸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콜트사건의 재판부(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콜트노동자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5년 넘게 복직투쟁을 벌여 온 노동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같은 법정에서 열린 콜텍사건의 재판부(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콜텍노동자의 해고를 무효로 보기 어렵다”며 정반대의 판결을 내놓았다. 콜텍 노동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에 말문이 막혔다.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이렇게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나온 콜텍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우리나라 최고사법기관이라는 대법원이정리해고 문제에 얼마나 둔감한지 알 수 있다.
콜텍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제1부는 판결문에서 “콜텍 본사에 경영상의 위기가있었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장래에 닥칠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인정할 수 있다면, 해당 사업 부분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불합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하면서 “피고(콜텍 회사)가 대전공장의 폐쇄를 결정한 것이 피고 전체의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좀 더 자세히 심리한 뒤 최종 판단을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재판부가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판단 자체를 유보한 것이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본사의 경영사정이 멀쩡하더라도, 일부 사업부문의경영실적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판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의 핵심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의 범위를 무한대로 넓혀 놓은셈이다. 복직만을 위해 5년을 버텨 온 콜텍 노동자들은 이제 끝을 알 수 없는 법정싸움을 이어 가거나, 먹고사는 고단함에 못 이겨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1.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오른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삶과 생계를 위협하는 정리해고 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의 심각한병리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정리해고 사업장인 쌍용자동차의 경우 지금까지 22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정리해고에 따른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릴레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3월 30일 쌍용차정리해고자 이아무개(36)씨가 경기도 김포시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사망이다. 숨진 이씨는 95년 입사해 쌍용차 부품품질팀에서 15년간근무하다 지난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가했다. 파업이 끝난 뒤에는 희망퇴직을 거부하다 해고됐다. 해고된 뒤 3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한 그는 김포에 임대아파트를 구해 생활을 이어오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지난 2월 경기도 평택시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해고 후 3년이 다 된 지금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해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고 한탄하는 그의 모습은 동료들이 기억하는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미혼인 데다 부모도없었던 그는 홀로 죽음을 택했다.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처럼 정리해고는 당사자와 가족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다. 노동계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자나 재직자 모두 정리해고에따른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자는 무기력감·우울감과 함께 생계난에 노출돼 있고, 재직자들은 해고자들에 대한 애증의 심경과 함께 높아진노동 강도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참여연대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쌍용차 정리해고·무급휴직자의 9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52%가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자살률은 일반 자살률보다 3.7%나 높다.
이들을 바라보는 가족들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2명의 사망자 중 3명이퇴직자나 해고자의 부인이었다. “휴대전화가 고장 나도 고칠 필요가 없을 만큼 쌍용차 해고자들은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고, 무서운 속도로 가족 해체가 이뤄지고있다”는 권지영 쌍용자동차가족대책위원회 대표의 말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쌍용차노동자와 가족의 상태를 대변한다.

정리해고와 옥쇄파업, 경찰과 사설경비용역의 폭력을 경험한 노동자 중에는 더욱 분명한 정신과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몇 차례소개된 쌍용차 정리해고자 계아무개씨(40)의 사례가 그렇다.
계씨는 2009년 파업에 참가한 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자신이 공장 안에서 파업을벌이고 있다고 인식했다. 정리해고 시점에 현실이 멈춰버린 것이다. 그는 집 베란다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방과 벽장에 생수·라면·인스턴트식품·쌀·과자·담배·술·화장지·의약품 등을 빼곡히 채워놓았다. 그는 파업 당시 겪었던 단전·단수의경험, 회사 측의 의료진 차단, 경찰병력 투입과 선무방송, 경찰 헬기의 소음 등에따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데 이르렀다.
이렇게 정리해고자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동안 정부나 회사 측은 실효성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평택시가 해고자 자녀들에게 중·고등학교 학자금을지원하는 것이 사실상 지원의 전부다.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만 해결될 수 있는 재취업 문제도 꽉 막혀 있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해고자들은 건설현장 일용직 등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해고자들의 재취업 실태 파악에 소극적이다.
해고자 못지않게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2009년 파업 당시 ‘회사가정상화되면 복직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무급휴직자들이다. 하지만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키겠다던 회사의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 알 수 없다. 무급휴직자들은 해고자의 처지와 다름이 없지만 회사에 적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재취업을 할 수도,퇴직금이나 실업급여의 혜택을 볼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놓여 있다.
그런데도 회사 측은 “노사 합의에 따라 생산이 정상궤도에 올라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이 가능하면 그때 무급휴직자들을 복직시킬 수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있다. 생산물량과 노동시간·작업속도 등 복잡한 변수 때문에 현대·기아차처럼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들조차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난항을 겪고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쌍용차 무급휴직자들의 복직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또 누군가 죽음을 향해 한발 내딛을지 알 수 없다.


2. 정리해고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정리해고 하면 국내 ‘조선산업 1번지’로 불리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빼놓을수 없다. 한진중공업 회사 측은 지난해 ‘희망버스’라는 대중적 저항과 국회 청문회,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에 걸친 크레인 고공농성 등에 부딪혀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추진한 이유는 이렇다. 애초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영도조선소의 선박 수주가 없어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이는 사실이 아니다. 조 회장은 영도조선소에 선박 수주가 없다고 했지만, 선박수주는 한진중공업이 발주자와 계약해 어느 조선소에서 생산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지,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가 경쟁을 해 계약을 따오는 것이 아니다. 영도조선소수주물량 ‘0척’이라는 기록은 달리 말하면 회사 측이 영도조선소의 물량을 인위적으로 줄이고,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가동률을 높였다는 뜻이 된다.
한진중공업의 경영사정이 긴박하지 않았다는 정황은 또 있다. 회사 측은 언론을통해 회사가 위기에 처해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8월 2천억 원의 무보증사채를 이자율 5.25%의 저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메리츠·우리·키움증권 등 10개의 대형 증권회사들이 이를 모두 인수했다.
한마디로 금융기관들은 수년간 한진중공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진중공업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한진중공업의 경영사정을 둘러싼정리해고가 문제가 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리해고의 목적이 딴 데 있었던 것은아닐까.

노동계는 강성노조로 분류돼 온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무력화하기 위한것이 정리해고의 진짜 목적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실제 한진중공업은 80년대 중반 이후 극렬한 노사 분쟁 사업장이었고, 파업에 따른 손배가압류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등 노조간부들이 노사분규와중에 숨지기도 했다. 회사로서는 지금 당장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노조를 약화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여지가 크다. 그리고 회사와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기존의 노조는 무력화됐다. 지난해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한진중공업에도새 노조가 등장했고, 회사 측은 “새 노조 조합원에게만 고용 등에 대한 혜택을주겠다”며 노골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결국 기존노조 조합원 상당수는 새 노조로옮겨갔다.

3. 제2, 제3의 한진중공업이 너무 많다
국가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자는 10만 2천명에 달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다. 고용보험 피보험자 자격을 비자발적으로상실한 노동자 중 정리해고자의 규모를 집계한 것인데 전년보다 30%나 늘어났다.
정리해고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인원이 12만 3천 265명에 달했던 1998년 외환위기 때에 근접한 수준이다.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운 제2, 제3의 한진중공업이 그렇게 많았다는 얘기다.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 요건은 4가지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 노력, 대상자의 공정한 선정,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협의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법원이 이런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 서두에 언급한 콜텍 정리해고 사건에 관한 대법원판결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법원은 아직 닥치지 않은 경영위기를 예방하겠다면서 정리해고를 강행한기업들에까지 면죄부를 주고 있다. 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추세이다 보니정리해고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는 일부 기업이 노조를 무력화하고자정리해고를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계에선 노조 전임자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경북 구미에 있는 반도체업체 KEC의 정리해고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한진중공업의 사례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우리와 달리 외국에선 정리해고를 엄격하게 규제하고있다. 독일·프랑스는 배치전환·재교육·조업단축의 시행 등의 해고회피 노력이전제되지 않는 정리해고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또 사용자로 하여금 고용유지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정리해고의 구체적 요건과 절차·방법 등을 단체협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도 노동관계법으로 정리해고를 제한하려는 추세다.
이렇듯 외국에선 해고의 절차와 요건도 엄격할 뿐만 아니라 해고자를 위한 재취업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동관계법에 규정된 정리해고요건은 느슨할 뿐만 아니라 법원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행정당국이 고용유지지원금이나 전직지원장려금 제도를 활용해 집단해고를 예방하려 하나 실제로는유명무실하다. 우리나라의 정리해고제도를 손질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4. 정리해고 문제 해결, 정치권에 달렸다
지난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노동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정리해고 제도개선과 관련해서는 야권의 공약이 눈길을 끈다. 한국노총과 민주통합당은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노동공약에 포함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긴박한 경영상 이유를 제외한 집단해고 제한 △해고회피 노력 의무화 △정리해고의 절차적 요건 신설 △해고회피 노력과 협의결과미흡할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고 효력을 2개월 범위에서 일시 정지 △해고자에대한 구제조치 명문화 등을 약속했다.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도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를 노동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정리해고와 관련한 갈등도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도 최소화될 것이다. 물론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을 때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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