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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국의 외교전략 재검토

저자 서보혁 코리아연구원 연구기획위원
등록일 11.12.07 조회수 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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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아시아의 부상


 지난 10월 7일 커트 캠벨(Kurt M. Campbell)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서울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양국은 동맹을 확대 강화하는 차원에서 아·태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논의할 차관보급 공식 대화를 출범시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여론은 한국동맹이 중국을 견제하는 지역동맹으로 변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응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에 의존하는 대신 중국, 러시아와 대립하는 현상을 초래한 바 있다. 동북아는 여전히 양자관계의 합일 뿐 지역협력을 제도화 할 비전은 없는 것인가?
동북아시아는 지리적으로 한중일 3국과 러시아, 대만, 몽골 등을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으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중일 3국만 합친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인구가 각각 전 세계 GDP와 인구의 20%가 넘는 규모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동북아시아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적 유산을 안고 있고 세계 최대의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오늘날 동북아의 정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양한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그들 중 동북아의 특징이라 말할 정도로 의미심장한 현상 세 가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공산당 주도의 정치안정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계속해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유지된다면 중국이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될 것은 시간문제이다. 중국은 이미 수출 규모와 무역 규모에서 세계 1위이다.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구매력평가지수(PPP)를 기준으로 한 중국의 실질 경제규모가 2016년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했고, 중국 측도 2020-30년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을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국방비 증대로 연결되고 있다. 올해 중국의 국방 예산은 지난 2010년에 비해 12.7% 증액된 780억 달러이다.
 반면에 미국의 무역수지와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위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 미국은 적어도 지난 10여년 사이 거품경제, 기술경쟁력 하락, 반테러전쟁 등으로 무역수지와 재정수지, 두 측면에서 건전성이 크게 악화되어왔다. OECD에 따르면 미국은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92.8%이다. 그리고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10.5%로서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7.7%), 그리스(-8.3%)보다 더 심각한 형편이다. 무역수지 규모도 정체된 상태이다. 미국의 경제 불안은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미국 패권의 물리적 기반을 위축시키고 있다. 채무 불이행 상황을 간신히 넘긴 미국은 의회 결정에 따라 향후 10년간 약 9,170억 달러의 연방정부 지출을 삭감하고 그중 국방비는 최대 6,000억 달러를 삭감할 예정이다. 그럴 경우 미 육군과 해병대 병력은 최소 11만, 최고 20만 명이 감소되고 각종 무기개발과 배치도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패권의 쇠퇴, 중국의 부상이 패권 전이(power transition)로 이어지면서 정치군사적 갈등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미중관계는 동북아에 패권체제의 불확실성을 말해주고 그에 따른 국가관계의 합종연횡 가능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둘째, 현 동북아 정세의 특징으로 초국적 교류의 증대와 함께 초국적 문제의 영향력도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879만 7,658명인데 이 중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인의 입국이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이 숫자는 2000년 4개국 국민의 한국 방문 수의 1.6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이와 함께 일본의 쓰나미와 방사능 오염 사태, 그리고 북한 핵문제와 같이 특정 국가의 문제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녕에 주는 파급력은 우리가 절실히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싸스(Sars), 조류독감, 에이즈(AIDS), 말라리아와 같은 보건문제도 일국 차원의 문제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주노동자 및 난민 문제도 역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 문제는 대량 탈북사태를 연상시키지만 조선족, 중국인, 동남아인들이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으려 국경을 넘나드는 현상이 더 큰 관심사이다. 이와 같이 대중의 삶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에 대해 개별 대응이 아니라 역내 협력이 없다면 해결이 난망할 것이다.


셋째, 최근 동북아 차원에서 두드러진 정세를 꼽으라면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북방 3국의 협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북중간 무역 규모와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동시에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북한의 대외무역(남북교역은 제외) 규모는 전년대비 22.2% 증가한 41.7억 달러로 나타났다. 수출과 수입은 전년대비 각각 42.4%와 13.2% 증가하였다. 우리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무역 비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처음으로 80%대를 돌파하였다. 그리고 북중간 무역 수지 불균형 및 교역품목의 비대칭을 고려할 때 북한의 대중 경제의존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북한과 중국은 중국의 대북 투자를 중심으로 양국간 경제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이는 중국의 동북지방 경제개발계획 정책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2009년 랴오닝성 ‘연해경제벨트 개발계획’, 지린성 ‘창지투(長吉圖: 창춘, 지린, 두만강) 개발개방 선도구 계획’발표에 따라 북중간 단동-신의주, 훈춘·투먼-나선 지역 연계개발 협력을 모색해왔다. 2010년 5월과 8월, 2011년 5월, 세 차례 연이은 북중정상회담의 논의사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선 및 시찰 기관 등을 종합해볼 때 양국간 경제협력이 본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양국은 경원, 온성, 혜산 등 북한 지하자원의 공동개발, 중국의 나선지역 1호 부두의 사용, 신압록강대교 건설, 압록강-황금평 공동개발, 훈춘-나선 간 도로포장 착공, 나선시와 청진항 등을 통한 중국의 동해 출해권 획득 등에 합의하거나 착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10년 북한과 러시아의 교역(1억 1천만 US$)은 북중 교역에 비해 크지 않지만 이전 해의 두 배이다. 앞으로 양국은 미국의 경제재건 및 외화 획득, 러시아의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의 개최 및 극동지역 개발 등 상호 전략적 이해가 겹쳐있어 경협이 늘어날 전망이다.
 

 2011년 북중러 3국간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큰 사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8월 20일-25일 동부 시베리아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가진 후 보인 귀국 여정이다. 김 위원장의 귀국 동선은 25일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방문, 26일 중국 허이룽강성 통과 및 치치하얼시 도착, 27일 중국 지린성 통과 및 퉁화시 도착을 거쳐 27일 귀국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이 3일간의 귀국길을 중국을 경유할 때 중국 측은 해당 자치주 및 시의 당 서기 및 행정 책임자는 물론 베이징에서 당 대외연락부장(왕쟈루이), 국무위원(다이빙궈), 철도부장(성광쭈)이 현지까지 와서 환영하며 동행한 점이 눈에 띈다. 이와 함께 9년 만에 이루어진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동부 시베리아 지역이고,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5. 20-27) 이후 3개월 만에 진행된 점은 북중러 3국이 동북아시아 공동개발을 놓고 3국간 협력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동북아 역내 경제 및 인적 교류의 증대가 대화와 이해를 증진시키고 공동이익 창출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나아가 기존의 동맹관계, 혹은 각국의 안보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런 동북아 정세가 한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동북아 외교를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2. 한국의 동북아 외교 성찰


 목하 우리들이 보고 있는 동북아의 역동성과 정치경제적 비중의 증대가 한국 외교에 주는 함의는 진영외교나 동맹외교와 같은 기존의 관성으로는 새로운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미동맹 관계를 중심에 놓고 동북아를 사고하는 것이나 한미동맹 하에서 다른 주변 3개국과의 양자관계를 사고하는 것은 안이한 지역외교에 해당한다. 이제까지 우리 외교정책에서 하나의 권역으로서 동북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냉전 해체 과정에서 벌인 북방외교와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벌인 경제외교를 통해 동북아의 잠재력과 역동성을 인식할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진영외교에 젖어온 관성과 분단 현실로 인해 동북아시아를 그 자체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경제, 인적 교류가 증대하고 역내 공동협력의 기운이 높아져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 동북아를 인식할 때이다. 진영외교, 양자외교와 같은 관성으로는 효과적인 외교를 전개하기 어려울뿐더러 결국 한국의 역내 위상과 역내 협력에의 기여도가 낮아질 우려가 있다. 물론 우리가 아무런 비전과 준비 없이 동북아 허브국가를 일방적으로 주장한다고 해서 동북아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내 행위자들과 쌍방향 대화에 나서며 상호 신뢰를 높이고 지역 차원의 공동 발전 전망을 공유할 때 동북아의 실체가 분명해지고 역내 국가간 협력을 증진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지역외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지역외교의 한 권역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아태외교의 비전과 방향을 별도로 설정하지는 않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추구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인 동시에 국제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으므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한미동맹을 전제로 4강 외교를 적극 벌여나갔다. 또 김대중 정부는 남북철도 연결을 대륙철도 연결과 연계 접근하면서 동북아의 잠재력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주변 4강 외교를 중심으로 동북아를 접근하였다.


 그에 비해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며 동북아 외교를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 등장한 참여정부는 “평화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외교적 기반 확충”을 8개 외교정책 기조 중 하나로 꼽았다. 참여정부는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룩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하여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구현하는데 기여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동북아 평화·번영 외교”는 북핵 문제의 해결 추진, 한·미 관계, 한반도 주변 주요국과의 관계,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구축 등 4가지 과제로 구성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때 추진한 한반도 및 대륙 철도 연결사업을 이어가 한반도-동북아-세계를 잇는 연결고리로, 그리고 역내 공동발전의 터전으로 동북아를 인식하였다. 나아가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하여 국내는 물론 주변국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의 세계경제적 비중 증가, 역내 상호의존을 바탕으로 지역 안보협력의 제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한국외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그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이 미흡한 상태에서 공개적으로 추진하며 적지 않은 비판을 초래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가 모색한 동북아 외교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 정부가 외교안보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 <성숙한 세계국가>는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협력네트워크 외교, 포괄적 실리외교, 미래지향적 선진 안보체제의 4개 전략을 제시하였다. 그중 협력네트워크 외교 전략 안에 “동북아 협력체제 구축”이 하나의 중점과제로 언급되고 있다. 이 과제는 한미 동맹관계 강화, 주요국(일본, 중국, 러시아)과의 관계 강화 다음에 제시되고 있다. 현 정부는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체제를 활성화 하는 목적을 “비핵 한반도와 평화적 통일여건 조성”으로 말하고 있어 미래 동북아의 비전 속에서 한국의 지역외교 방향을 배치하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현 정부는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호주·뉴질랜드·인도네시아 방문을 계기로 “신아시아 외교 구상”을 발표하였다. 이 구상은 인근 우방지역인 아시아 국가들과의 실질협력관계 강화를 주변 4개국 외교와 더불어 우리 외교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 중앙아시아, 오세아니아, 태평양 지역이 망라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및 우리의 개발 경험 공유, FTA망 활용, 국제 금융위기, 기후변화, 식량ㆍ에너지 안보 등에 대한 협력 체제 구축을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신아시아 외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고 기존의 아태지역외교를 모두 묶어낸 것에 불과할 뿐, 해당 권역별 조건과 특징을 고려한 외교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주요 외교수단으로 제시한 ODA 증액(2015년까지 30억 달러)이 경쟁력과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고, 지역 전문인력 확충과 제도적 뒷받침 방안이 없다는 지적도 일어났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에게 동북아는 하나의 뚜렷한 실체 또는 미래 발전의 중추로 인식되지 않은 채 우리의 일반적 국익 달성의 공간이라는 기존의 관성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상 근래 세 정부의 동북아 관련 외교정책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동북아 외교는 동북아를 하나의 독자적 단위로 본다는 전제 아래 그에 대한 외교 비전과 전략을 핵심 요건으로 한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동북아를 사고하고, 한미동맹관계를 중심에 놓고 지역을 보조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국익의 극대화와 당면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도 동북아를 주목하고 동북아 외교전략을 수립할 때이다. 아래에서 그 일단의 단상을 생각해보자.

 

 

3. 한국의 동북아 외교전략 구상


 한국과 같은 나라는 패권국도 약소국도 아닌 그 중간국가(middle power)에 해당한다. 중간국가의 국익 증진 방법은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국제사회의 공통과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인데, 연성국력(soft power)을 활용해 부족한 경성국력(hard power)을 보충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한국은 경제적 능력이나 민주화의 진전 정도, 국제적 지위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중간국가의 외교정책을 전개하기에 충분한 필요조건을 갖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중급국가 특유의 자율적이고 균형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할 발상의 전환과 정책 의지라 할 수 있다. 중간국가는 자국의 국력 못지않게 민주주의, 지도력, 국제적 신뢰도 등과 같은 무형의 외교 자원을 활용하여 자국의 이익과 국제사회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데 적합하다. 세계 공통의 관심사와 국가이익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은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외교정책을 수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중간국가로서 한국의 외교정책 방향은 크게 통일지향적 평화체제 수립, 선린외교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인간안보에 기초한 국제협력, 민주적 평화국가상 확립 등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이중 본 논의 주제인 동북아 외교 방향을 생각해보자.
중간국가로서 한국의 평화외교노선은 인류의 이상을 한반도에 실현하고 지역과 세계에서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 노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 연결고리가 남북한 평화통일 달성과 동북아 안보협력공동체의 수립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과 동북아의 안보협력은 통상·금융, 비확산, 환경, 자원 개발 및 수송, 인도적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양자는 선후가 아니라 병행발전의 관계에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 동북아에서 이해관계가 높고, 그 의미는 북핵문제와 교역 규모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과 균형적인 선린외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동맹외교에 편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북아에서 획득 가능한 막대한 국가이익을 스스로 제한해왔는지도 모른다. 대미일변도의 외교관계,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모색되고 있는 사실상 중국 견제용 지역동맹화 움직임은 한국의 대외협상력과 국제적 지위를 약화시킬 것은 물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공존공영의 동북아 협력시대에 능동적으로 대비하고 그것을 한반도 평화정착 및 통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계속되어온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을 청산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북중러 3자가 추진하는 동북아 북부지역 개발에 적극 참여해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 지역협력, 남북관계 발전, 자원외교 등 다각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동북아 4개국을 향한 균형적 선린외교는 한국의 국가이익과 지역의 공존공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동맹위주의 외교는 조정되어야 하고 그것은 지역 선린외교의 주요 부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동북아 차원에서 볼 때 역내 다자안보협력 기구의 필요성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지역협력을 촉진하는 요인으로는 먼저, 역내 경제적 상호의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점인데, 그에 따라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공동번영을 지속할 역내 다자 경제협력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다른 촉진 요인으로는 군비경쟁, 영토분쟁, 자원 접근, 해양 안전, 각종 불법거래, 역사적 인식 차이 등 부정적 양상을 띠는 각종 잠재적 갈등 요인들 대부분이 양자간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적 차원의 다자간 안보협력이 필요하다. 즉, 동북아시아는 경제적 공동번영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고 다양한 불안요소들을 억제하여 공동안보를 추진할 다자간 안보협력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단기적으로 동북아 안보협력체 건설을 위한 다자주의적 접근의 필요성과 그 현실 사이의 격차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특히, 국가간 불신과 갈등이 존재하고 협력의 습관이 낮은 역내 환경을 고려할 때, 당면한 공동 관심사에 대한 협력의 기회를 포착하고 그 성과에 기반하여 협력의 범위를 넓히는 ‘사안별 다자적 접근’이 타당할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의 비확산 협력이나 사막화 억지, 조류독감 퇴치 등을 위한 역내 국가간 환경 협력 등이 그 실례이다. 사안별 다자협력은 동북아 국가간 정치적 불신 해소, 일국의 기회비용 최소화, 다자협력의 효용 학습 등 전면적인 다자안보협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유용하다. 한국과 다른 동북아 국가들은 이미 비확산 및 환경 분야 등에서 역내 다자협력의 중요성과 효과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은 ‘중간국가’의 지위를 살려 역내 공동협력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과정을 선도함으로써 한반도 평화공동체와 동북아 안보협력의 병행 발전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중일 3국간 협력의 제도화가 동북아 다자협력에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월 27일 서울에서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출범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국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 및 공동번영에 이바지하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6자회담 참여국들은 이미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만이 아니라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지역 평화·안보공동체 수립을 위한 실무회의에 착수한 경험이 있다. 군사안보분야에서도 다자안보협력은 신뢰조성, 투명성 증대, 공동안보 추진 등을 통해 역내 국가간 불신과 잠재적 갈등요인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군비경쟁 대신 인간안보에 기초한 공동이익 증진을 추구할 수 있다. 먼저 분야별 다자안보협력으로 시작하여 그 과정에서 나타날 협력의 경험을 확대하고 상호 존중과 호혜주의에 입각하여 다자안보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을 전망할 수 있다.


 다자안보협력을 한국의 외교안보전략으로 추진할 경우 기존 동맹관계는 보완적 역할로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군사안보 중심의 동맹관계는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양국간 대등한 협력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동맹관계의 재편은 다자안보협력의 발전 속도를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한미 동맹관계는 다자안보협력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성격 전환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다자안보협력이 현실화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면 절대안보에 입각하고 안보딜레마에 의해 촉진되는 개별 국가의 안보정책은 전향적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이 한반도 문제, 특히 비핵화와 평화정착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을 소홀히 할 것으로 인식하고, 다자안보협력에 소극적이면 곤란하다.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촉진해야 한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은 동북아 다자협력의 틀에서 접근할 때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동북아 안보협력은 동북아 성원들이 공존공영할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시각에서 동북아의 일원인 한국도 기존의 외교 관성에서 탈피하여 동북아 지역외교의 비전을 갖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때이다.

 

 

 

* 본문은 하단에 첨부되어있습니다.

   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국의 외교전략 재검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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