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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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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책연합이어야 하는가?

저자 고 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등록일 11.12.07 조회수 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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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합정치에서 가치·비전·정책의 중요성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연합정치는 야권정치세력들의 화두가 되어 왔다. 처음에는 연합정치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주장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길이 연합정치로 통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되었다. 연합정치는 2012년 총·대선 국면에서도 야권정치세력들에게 정권교체를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코스로 간주되면서, 정당 내외에서 연합정치를 위한 다양한 기구들이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야권세력들에게 연합정치가 필요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권교체를 위해서이다. 어느 나라,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연합정치를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선거에서 다수를 형성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다고 하는 데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특히 다당제의 정치현실 속에 놓여 있는 나라들에서 대부분의 정당들은 단독으로 집권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합정치는 집권으로 가는 필수 코스이다.
 그러나 집권의 목적이 직접적으로는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이 연합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연합정치의 질적 수준이 심화될수록 거기에는 단순한 집권 이상의 조건이 필요해지게 된다. 특히 정당정치의 발전 단계가 앞서 있는 나라들일수록 연합정치는 집권이라는 목표 이상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치와 정책이다. 서구 선진국가의 연합정치는 ‘선거 승리와 안정적정부의 구성’이라는 목표와 함께 ‘중요한 정책의 추진’이라는 목표가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연합정치가 주로 선거 승리와 관직 배당을 목표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권력 획득을 위해 필요하다면 가치나 정책노선이 다르더라도 개의치 않고 연합을 맺기도 하고 깨기도 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합정치의 효용성 자체가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는다. 연합정치의 내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에서 연합의 당사자들은 항상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성공해 왔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연합이 그러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한국정치의 여러 시대적 조건들이 크게 바뀐 만큼 연합정치의 형식과 질도 시대를 따라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째, 한국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온갖 비판과 불신이 팽배하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 수준이 결코 예전과 같지 않다. 특히 정치인들의 수준도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진 것은 유권자들의 수준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어떤 정치인이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를 헤아리고, 그들의 주장이 가치 있는 것을 담고 있는지를 살피며,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진다.

둘째, 연합정치의 대상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연합정치의 대상이 보수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실용주의정당과 보수정당, 실용주의 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가치와 정책이 별로 문제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연합정치는 개혁적 실용주의정당과 진보적 이념정당이 결합하는 것인 만큼 가치와 정책이 중요해지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지금 시점에서 가치와 정책은 혁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안철수 현상’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분분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혁신’과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혁신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그 동안 야권진영의 담론에는 연합이나 통합만 있었지 혁신과 변화는 없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는 야권도 총·대선을 향해 나아가는 전략적 경로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즉 혁신과 변화를 통한 연합이 중요하고, 또한 연합은 결국 혁신과 변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2. 진보개혁진영의 가치·비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낡은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지금 시대정신은 다시 진보의 확장을 향해 역사적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먼저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국제 레짐이 더 이상 ‘세계화’라는 문명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패러다임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실업과 고물가, 빈부격차 등에 좌절하고 분노한 전 세계 사람들의 저항이 폭발하고 있다. 2008년 그리스 소요사태, 2010년 튀니지 혁명,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 저항운동, 칠레 대학생들의 국립대학 교육 강화 운동, 스페인의 긴축재정 반대 집회, 이스라엘의 물가 항의,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 최근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일어난 시위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국제 레짐의 지속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의제지형의 변화에서도 보이는 바, 예를 들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탈핵의 흐름은 환경·생명의 이슈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중요한 변화의 기운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수년 간 한국 사회를 가치관의 부재와 혼란, 전망과 방향의 상실로 몰아넣은, 돈과 개발이 주류가 되는 ‘욕망의 정치’가 이제는 사회정의와 복지, 공정사회, 민주주의, 평등에 대한 대중들의 새로운 관심과 갈망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최근 각종선거에서의 유례없는 투표율의 상승을 20~40대 유권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경이롭다. 의제 정치의 지형도 크게 바뀌고 있다. 지금은 의제가 복지 이슈를 넘어 재벌체제의 특권을 비판하고, 노동의 핵심 문제를 거론하는 상황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런 흐름들은 새로운 진보주의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87년 체제를 딛고 새로운 미래체제로 나아가라는 역사의 명령을 전하고 있다. 87년 체제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뒤섞이면서 역사의 진보와 퇴행을 동시에 엮어왔던 시대였다. 이제 새로운 체제는 그 같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사회 구조를 극복하고 사람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중시하며, 사회통합원리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체제에 우리가 담아야 할 기본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평화, 복지, 민생, 민주, 정의, 평등의 기본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가치가 바로 ‘정의’, ‘평등’,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어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면 다른 면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그 사회는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군사력이 탁월하거나 생산성이 높다고 해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면 좋은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통상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경제력, 복지,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충족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 정의의 기준이 명확하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안보와 치안, 생산효율성 측면에서는 그런대로 좋은 사회의 축에 속했지만,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좋은 사회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보다 더 높은 단계의 새로운 체제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란 존 롤스의 표현을 빌면 “모든 사람이 어떤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불가침성”을 갖는다는 전제 위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공정한 협력”이 이루어진 사회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극심해져 어느덧 극도의 불공정과 불평등이 판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사회권의 영역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극소수 특정집단에게만 집중됨으로써 특권이 구조화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기본적 시민권의 위기’,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이다.


둘째, 바로 여기서 우리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로서 평등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에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것만큼 긴급하고 절박한 과제는 없다”고 단호하게 외쳐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탈특권’, ‘탈재벌’, ‘탈토건’을 선명하게 내걸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평등 기반을 강화하는 것은 공동체의 지속적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평등의 강화는 소극적인 기회의 평등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도 보다 적극적인 삶의 기회를 보장하려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기득권세력들에게 있어서도 책임·존경·품격 같은 문화적 자본까지를 더해 지속가능한 이익을 추구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공동체적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의 강령을 보면, “민주, 자유, 복지, 평화, 환경을 당의 기본 가치로 삼아 중산층과 서민의 권익을 적극 대변”한다고 되어 있다. 뉴 민주당 플랜에는 기회, 정의, 공동체를 추구한다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평등에 대한 적극적 지향이 빠져 있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정당들은 평등, 연대, 공공성의 가치를 중시하지만, 여기서의 평등이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수준에서의 추상적인 지향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보개혁세력의 연합정치를 실현함에 있어서 평등의 가치를 전면화하되, 거기서의 평등이란 주로 공적과 공헌에 따라 권리를 분배하는 소극적 기회의 평등도 아니고, 노력과 기여에 상관없이 결과를 중시하는 계급적 평등도 아닌, 시민적·입헌적 권리의 평등을 지향하면 될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는 새로운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이다. 새로운 사회발전모델은 민주주의를 상위의 원리로 해서 성립하는 시장경제체제이다. 민주주의의 두 축은 ‘시민의 참여’와 ‘공적인 국가’이다. 시장경제는 이 같은 민주적 제도들에 의해 견제와 균형이 확립되고 조절되는 바탕 위에 서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민들의 참여에 기반을 두고 소비자, 시민단체, 전문가, 여론 등 시민사회세력이 사업자단체를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기업과 시장의 장점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고 모든 시민의 동등한 권리를 실현하는 공적 정의를 확립하고, 나아가서는 대내외적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 연구, 건강, 훈련, 그리고 수많은 필수 분야에 대한 사회적 지출과 투자를 책임지는 등 적극적으로 공공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를 창출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오늘날 ‘노동’, ‘복지’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시민권의 위기가 던져주는 제반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의’, ‘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핵심적인 가치 축으로 삼아 새로운 사회발전모델을 설계하고, 연합정치의 내용도 그에 입각하여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3. 연합을 위한 정책의 방향과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연합정치는 권력 장악을 위해 단순하게 합종연횡하는 게임이 아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 새로운 한국의 집을 건설하자는 의지와 내용을 담아 단결과 협력을 다짐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정책 어젠다의 운영에서 종래의 관행과 태도를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그와 관련하여 민주당에만 국한하여 설명해 보자면, 지금까지 민주당은 사회패러다임의 변동에 조응하는 큰 정책적 사고를 해본 적이 없다. 항상 실무관료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그에 대해 훈수하는 수준의 일상적 정책정치의 수준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집권을 했을 때도관료들에게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관료들에게 부탁을 하고 의존하는 모양이 되었다. 정치활동 과정에서 큰 사고를 하지 못할 때 정당들은 중도로 옮아감으로써 항상 방어적으로 되고, 정치는 기능인들의 밋밋하고 재미없는 실무적 작업이 되어버린다.
 연합정치에서 채택해야 할 정책의 큰 방향은 정책 틀의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를 원칙으로 삼아 ‘탈특권’, ‘탈재벌’, ‘탈토건’, ‘탈원전’과 같은 굵직한 방향들을 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게 울타리를 쳐놓고 가지 않으면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울타리 없이 논쟁하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방향에서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차이와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책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통해서 연합정치에 참여하는 각 세력의 정책을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정책 어젠다를 가지고 논의를 진행해보자. 먼저 재벌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 동안 리버럴 진영은 사실상 재벌개혁에 대한 정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버럴 진영이 재벌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천명한 것은 1999년 8.15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행한 연설에서 밝힌 ‘재벌개혁 5+3원칙’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리버럴 진영의 몇몇 인사들이 재벌의 불공정거래나 탈법행위 등에 대해 비판을 해오기는 하였으나 재벌개혁에 대한 명확하고 종합적인 입장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이와는 달리 진보정당들은 당 강령에서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소유권 제한(국유화), 재벌해체를 명기해 왔다. 그러나 그들 또한 묘하게도 추상적인 선언만 있지 현실적으로 재벌을 어떻게 개혁하자라는 주장을 제시해오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리버럴 진영은 지금까지 재벌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단호하게 밝히고 이를 실천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미 한나라당조차도 어느 정도 동의를 표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도입을 당장에 즉각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재벌개혁의 내용을 한층 더 확장하고 심화시켜야 한다. 즉 오늘날 한국에서 재벌문제는 공정거래정책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아주 복잡하고 근원적인 것이 되어 버린 만큼 좀 더 근본적 수준에서의 해결 방안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벌대기업의 소유 및 경제력 집중에 대한 강력한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기업집단법 제정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편 진보정당들은 강령적으로는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다원화”(민주노동당), “재벌지배구조를 해체하여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전환”(진보신당)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 당장 추진해야 하는 중단기적 정책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데, 위에서 제시한 수준이라면 정체성과 충돌하는 일 없이 수용할만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노동 일자리 이슈에 대한 정책연합의 방안을 보자. 지금까지 리버럴 진영은 ‘차별 해소’와 ‘공정한 시장경제’라는 관점 하에서 비정규직 문제 등에 접근해 왔다. 물론 그마저도 불철저한 태도여서 여러 가지 비판을 들어왔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법의 개정과 관련하여 리버럴 진영은 ‘사용사유제한’을 놓고 진보정당들과 차이를 보여 왔다. 지금은 정책지형이 많이 변하면서 리버럴 진영도 그에 대해 거의 수용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므로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민주당의 강령에 나와 있는 대로 “비정규직 감축” “노동기본권 강화” “노동시간 선진국 수준 단축과 일자리창출” 등을 제대로 실천하면 된다고 본다. 물론 실천의지가 정말로 있느냐의 문제는 검증되어야 하는 대상이긴 하다. 진보정당들의 경우에도 정규직 전환만을 노동 일자리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하던 비현실적 자세를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는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실제로 어느 나라의 좌파정당들도 그처럼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 일자리 문제와 관련하여 진보개혁진영의 연합강령은 종래의 방안에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노동의 권리를 큰 폭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노동법에서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조항들을 수정하여 권리를 강화하는 조치들을 추진해야 한다. 정리해고의 경우 해고의 천국인 미국이나 덴마크조차도 우리보다 훨씬 까다롭게 요건을 정해두고 있는데, 우리는 정리해고를 기업주가 마음대로 악용하게끔 되어있으므로 이런 조항들을 크게 손질해야 할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중요한데, 노동조합의 협약적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를 포함하여 넓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편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자대표의 기업지배구조 참여”를 전향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업원지주제를 촉진하고 노동자들이 보유한 주식이 중요한 지지블록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짤 필요가 있다. 현재 진보신당의 경우가 “노동자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사회주의적 지향 하에서 그 같은 강령을 채택하고 있는데, 노동자대표가 기업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실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세력균형의 수단이다.
 복지정책 이슈의 경우 리버럴 진영과 진보정당들은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 복지라는 큰 틀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보편복지를 위한 증세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이념적 스펙트럼의 문제도 일부 있지만 방법론적 문제의 성격이 큰 것 아닌가 싶다. 이와 관련해서 중장기적으로 OECD수준으로 조세율(혹은 국민부담율) 수준을 높여가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보편적복지를 위한 증세의 기본 축은 중산층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이전에 특권세력의 과도한 특혜를 환수해 나가는 누진적 조세의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명확히 하면 소모적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원전에너지 정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각 정당의 강령을 보면 민주당은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위한 환경권”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표방하고 있으며, 원전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명이 없다. 반면에 진보정당들은 원전정책에 대해 ‘단계적 폐지’와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적 추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원자력 에너지체제의 전환이 비단 진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을 초월한 안전과 생명의 문제로 급속히 바뀌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연합정치의 주요 정책으로 ‘원자력 에너지의 단계적 폐지와 대안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채택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현행 소선거구-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가 사회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쪽으로의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를 확인하고 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진보정당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도 부합하는 것이므로 연합정치의 성사를 위해 상당히 긴요한 조항이 될 것이다.

 


4. ‘큰 사고의 정치’를 향한 도약을 기대하며


 진보개혁진영이 추구해야 하는 연합은 가치와 비전과 정책과 세력이 사위일체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 혁신과 변화가 2012년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연합정치 자체도 질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현실정치에서 가치·비전·정책이 갖는 실질적 유용성에 대해서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가치·비전·정책이 그 자체로 대중적 호소력과 영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적 담론이 될 수 있느냐의 차원과는 별개로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집권 목표에 대한 명분과 신념의 기반을 제공하고 가치의 논거와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전략을 짜고, 홍보를 하고, 정책을 만드는 데에있어서도 통찰과 문제의식의 저수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무릇 지금은 가치와 비전에 대한 신념이 결여된 채로는 정치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진보개혁진영이 채택해야 할 정책의 기준과 방향은 (1)새로운 체제 전환의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 (2)이념과 실용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 (3)사회적 시민권의 위기라는 공동체의 유지와 존립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것 등에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민주당에게 있어서 ‘큰 사고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당이 최소한 미국 민주당 정도의 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건이다. 미국 민주당을 진보적 정당 혹은 혁신적 정당으로 규정할 수 있게 하는 내적 정체성의 조건이 바로 뉴딜주의의 전통인데, 한국 민주당에는 그 같은 전통조차도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수준에서 정책의 내용을 짜고 선도해야 비로소 연합정치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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