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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 책팔이를 보며- is는 시리아의 이슬람국가가 아니라 인터넷 판매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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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c 학교에서 등록일 17.06.18
조회수 31 댓글 0

< 달집놀이>

                                                                                                          

‘헬, 대박!’ 

깊은숨을 몰아쉬던 노란 병아리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노란 병아리는 닭장 철망에 들어간 첫날부터 멘붕,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모두가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할수록 마치 배 멀미하듯 속이 메스껍고 하늘이 빙빙 돌아간다.

닭장 외벽에 부산을 떨며 칠하는 페인트 냄새가 병아리 코를 사정없이 찌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방학 동안 일 하기 좋은 그 많은 날 다 놓아두고 하필 병아리가 들어온 첫날 닭장 이곳저곳에 페인트칠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조용! 여러분은 오늘부터 무상급식을 먹게 됩니다.”

노란 병아리는 두근두근 뛰던 가슴이 벌렁벌렁 거린다. 어미를 두고 떠나 온 게 가슴이 아프지만, 땀 흘려 먹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언제든지 물을 마실 수 있고 먹이를 쪼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감사한 마음이 잠시 들기도 했다.

얼굴 양 볼에 살이 피둥피둥 찐, 한동안 말을 멈춘 주인이 다시 힘주어 말한다.

“여러분 모두가 범사에 감사하고 순종하여 믿고 따를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저기 양계장 어미 닭과 같이 머지않아 반듯이 알을 낳아야 합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앞에 서 있는 이분들을 무조건 믿고 잘 따라야…모두가 더욱더 많은 알을 빨리 낳아 이 닭장을 더욱 빛낼 것이라…신의 마음은 여러분의 창조역사와 늘 함께할 것입니다.”

닭장 주인은 누가 봐도 듣기 좋고 하기 좋은, 사실은 알쏭달쏭한 말을 마치자마자 힁허케 사라졌다. 뚱뚱한 몸집에 짧고 뭉툭한 다리, 머리가 반쯤 벗겨져 민둥민둥하고 큰 부리가 구불구불 한 그를 덩치 큰 늙은 개 한 마리가 쫄랑쫄랑 힘겹게 뒤따른다.

“왜 그러냐고 따져 묻지 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새끼도 못 까는 알을 낳아야 한다잖아. 꿈과 희망은 받는 것으로 말만 잘 들으면 공짜로 준다잖아. 모든 게 신의 뜻이니 뭐든 거스르지 말고 오로지 받아들여라….”

입이 삐죽 나온 옆 병아리를 보며 말했다. 옆 병아리는 노란 병아리 말을 듣고도 꿍하니 다문 입을 열지 않는다. 저만치서 살가죽만 남은 어미 닭이 소리친다.

“쉿, 조용히!”

병아리가 일제히 철망 밖을 살핀다. 닭장 지기가 철망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층층이 줄지어 선 철망 사이로 병아리들이 머리를 내밀어 뒤뚱뒤뚱 걸어오는 그들을 바라본다.

“…내일 아침에 검사해서 준비하지 못한 놈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겠다. 다들 알겠지!”

그들 가운데 몸이 마름모꼴인 큰 덩치가 사냥 매 눈빛을 쏘며 말했다. 그의 느닷없는 호통에 병아리 가슴이 다시 쿵쿵 뛴다.

‘검사, 벌점, 정신…뭘 말하지?’

노란 병아리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볼수록 더욱 혼란스럽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눈앞의 무엇이든 세세하게 살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을 못 하는 좀비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닭장부터 찾아온 어둠을 백열전구가 일시에 내몬다. 잠시 후, 다행히 닭장 지기가 어디론가 사라져 더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 무서움이 조금도 없는 구부러진 붉은 입 큰 부리를 가진 주인이 닭장 지기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임시 계약직은 정규 닭장 지기 뒤에 줄을 섰다.

몸이 마름모꼴로 넓은, 갈색 바탕에 엷은 색 얼룩무늬가 있는 등, 희끄무레한 배, 머리는 작은데 돌출된 주둥이, 작은 두 눈 사이에 큰 가시처럼 난 검붉은 털 등 제각각의 그들은 하나같이 발달한 입에 엷은 웃음을 물고 있다. 주인의 부릅뜬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를 살랑거린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더는 참지 못한 그가 먼저 입을 번쩍 벌렸다. 앵무새가 용감하게 그를 따른다.

“아직도 뭘 제대로 모르고 있군요. 신의 뜻을 내가 직접 입을 위아래로 쫙 벌려 보여줘야 합니까. 통째로 해체할 수도 있지만 참고 있습니다. 머리가 없는 좀비가 아니라면 생각 좀 하시오.

@*((s-is)*q)*%=x는 세계 1등 부교재 참고서 시장경제 모델 방정식입니다. 단, %는 대대로 고착된 값으로 통상 10입니다. x값을 ∞로 높이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하느냐가 지금 풀어야할 당면과제입니다.”

앵무새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받는다. 미간에 가시 털 두엇이 길게 난 시간제 닭장 지기가 머리를 흔들며 묻는다.

“@는 알의 단가란 걸 알겠는데, s와 i가 뭘 의미합니까?”

“한심합니다. s는 오프라인 판매량이며 is는 시리아의 이슬람국가가 아니라 인터넷 판매량, q는 닭장 총수량이지요. 이쯤에서 먹이사슬 생태계가 감이 좀 잡히나요? 초등학교 1학년 수준입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가나다라를 배우지 않아요. 이미 학원에서 다 배웠지요. 여러분은 학원에서 선행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창조경제 방정식이 경재를 살리는 디딤돌이라는 점을 모릅니까.”

이번에는 나이 가장 많은 닭장 지기가 나섰다.

“x알을 ∞무한대로 낳게 하려면 쉽게 @가격을 높이면 될 것 같습니다. @’*n=@로 n값을 크게 하면 됩니다. 컴퓨터도 입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미 결정된 결과치가 출력됩니다. 물론 입력과 출력 사이에 끼워 넣은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입력과 상관없이 출력결과가 달라지지만, 이 경우는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즉, 인풋으로 채택 부교재 종류를 늘리면 결국 총액이 증가하는 아웃풋 결론에 도달합니다. 가격은 x값에 영향을 주는 최대변수가 될 것입니다.”

“아주 좋아요. 결론적으로 교과서로는 알을 낳기 힘들어 큰 닭장으로 못 간다는 말이지요. 어차피 그림 몽당에 목차를 장황하게 나열한 것에 불과한 책이기도 하지만, 사실 학원에서 이미 선행으로 끝낸 걸 뭘 새삼스럽게 시간 낭비해가며 다시 펼쳐봅니까. 장차 스카이 양계장에 가서 달걀을 낳을 병아리는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 아닌가요.

다음부터는 뭘 좀 간단하게 본론만 얘기합시다. 더욱 효율적인 방안을 골치 아프게 빙빙 돌리는 간접화법 말고 직설적으로 말 합시다.”

배가 남산같이 불뚝한 닭장 지기가 추임새까지 넣으며 장단을 맞췄다.

“예, 잘하겠습니다. is=0 인터넷으로 빠지는 구매 수량을 0으로 만들어 버리면 될 것 같습니다.”

“쉬운 걸 괜히 어렵게 말해야 폼이 난답니까.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우리가 남인가요.

듣고 보니 앙꼬 없는 찐빵. 어떻게 인터넷구매량을 줄일 것인가? 이게 창조경제 핵심과제입니다. 결론적으로 발표 후 7시간 이내에 구입 준비토록….”

“훌륭합니다. 꿩 먹고 알 먹고, 멋진 승리의 다낚까 창조피싱 방정식입니다. 이러한 다낚까 피싱은 침체한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명목이 서고, 또 무엇보다 오로지 우리 자신을 위한 물심양면의 만리장성을 더욱 견고히 축성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시간 오후 4시, 당장 내일 아침 8시 0교시까지 부교재를 일제히 사 오도록 오늘 닭장에 갓 들어온 병아리에게 과제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봅니다. 야비할 수도 있겠지만, 과제를 수행하지 않은 병아리에게 얼차려와 함께 벌점을 줘야 ∞의 다낚까 창조경제 피싱 생태계 조성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터넷구매로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게 키포인트입니다.”

“과연 신의 역사, 한 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놀랍게도 창조경제 피싱 프로그램의 핵심가치는 날마다 더욱더 커가야만 하는 자본주의의 절대 악과 맞물리는 셈이군요. 악, 악이 아니라 절대 선입니다. 혀가 잘못 나왔나 봅니다. 송구합니다.”

“주인님, 제가 아까 보자마자 내일 아침까지 준비하지 못하면 혼 구멍을 내 쥔다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잘했어요. 하지만 인터넷 주문 시 당일 배달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모두 뽄을 좀 열심히 받아….”

그의 말대로 신의 뜻을 좇아 닭장 삽질경제학의 다낚까 피싱 대박모델이 비로소 완성된 것 같다. 빨고·핥고·몰고·말고·물어·낚아 먹는 피싱대회가 전국 4대강에서 출발해 바다 건너 남미를 거쳐 이라크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글로벌하게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국부론의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을 창조경제의 보이는 손으로 발전시킨 박부론은 국부의 원천인 노동은 더는 박부의 원천이 못 돼 오로지 취리만이 박부의 원천이라는 박부론 창조경제학 창시자인 명박 미세스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복종은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으로 월경할 게 분명했다.

노란 병아리가 이른 아침 0교시부터 밤 10시까지 교실에 잡혀있는 고등학생, 혹은 작은 비닐봉지 속의 금붕어같이 닭장 철망에 갇힌 지 달포가 지나고 있다. 철망 속에 갇힌 지 오래된 암탉들이 굵은 철사를 엮어 만든 철망 사이사이로 머리를 빠끔히 내밀어 소리친다.

고통 속에 낳은 알을 보며 부르는 기쁨의 노래인지, 혹은 이미 알을 빼앗긴 슬픔의 울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암탉은 수탉 없이 혼자 낳은 알, 곧바로 시장에 내다 팔릴 수밖에 없는 처지를 소리 높여 서럽게 우는 듯하다. 온기도 채 식지 않은 방금 낳은 알을 덥석 집어가는 손뭉치를 부리로 쪼아 물리치지 못한 자신을 원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암탉의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고 줄지어 벌벌 떨며 저녁 무렵의 어둠 빨처럼 산허리를 올라탄다. 노란 병아리도 가슴이 점점 쪼그라들며 두려워만 간다.

그날 이후 7일 동안 그 주인이라는 이를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닭장 지기들만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둘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들 모두가 제각각 개성이 있지만, 특이하게도 하나같이 긴 혀를 가진 개미핥기 같다. 그들은 차려 대로 날름날름, 혀를 내밀어 병아리를 어르고 핥는다. 처음은 알쏭달쏭하게 시작됐으나 점점 노골적이다.

“너희는 앞으로 하루에 두 개를 낳아야 한다. 만약 알을 낳지 못하면 즉각 퇴출이다. 북악산 도도새 님이 직접 뜨거운 물속에 집어넣어 털을 뽑고 칼질할 것이다. 허구한 날 징징대거나 정서적으로 미개해도 마찬가지다.”

얼룩무늬 등이 넓적한 금고지기의 입이 채 닫히지도 않았는데, 정원지기가 작은 머리를 빙그르르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돼지처럼 생긴 가시투성이 몸을 공처럼 둘둘 말아 뾰족한 입이 더욱 크다.

“지금 이 순간부터 열심히 모이를 먹어야 한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쉬지 않고 먹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머잖아 한 놈도 빠짐없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곧이어 어깨며 가슴에서 치렁치렁한 소리를 내며 나타난 장수지기 입에서 불을 뿜는다. 병아리는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불같은 호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차렷, 열중쉬어, 차렷, 앞으로나란히…부동자세!”

원산포격, 땅에 머리를 처박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병아리는 하나같이 꼼짝달싹도 못 한다. 몇몇 친구들은 오랜 부동자세로 얼음이 되어간다. 걸음을 영영 걸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오로지 절대적 순종과 복종만이 숨 쉴 길 같다.

충견들은 쉬지 않고 사방에 늘려있는 단물을 빨듯 입에 거품을 물며 힘을 주고 있다. 두툼한 빨대로 컵 속의 물을 눈물만큼도 남김없이 빨듯 하다. 병아리는 눈꺼풀이 자꾸만 아래로 내려와 허벅지를 꼬집어보지만, 오는 잠을 참을 수 없다. 꼬르륵, 소리가 병아리 뱃속 밖으로 나온다.

그때, 앞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난 가만히 못 있어!”

“가만히 있으래.”

“그래. 자기들이 주는 모이만 먹어야 장차 알을 낳을 수 있대.”

“아, 미치겠어.”

병아리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훔쳐 들은 머리보다 입이 큰 닭장 검사지기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야, 동작 그만.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랬지!”

똥덩이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간이역 화장실 똥물이 사정없이 튀어 올라 힘을 주고 있는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듯 그가 사라진 지 정확하게 7시간 뒤에 다시 나타났다. 곰삭지 못하여 거뭇거뭇한 똥 찌꺼기를 제치고 열길 높이 똥통을 단숨에 뛰어올라 엉덩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똥물같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닭장에 달라붙는다. 뺑뺑이를 반복해 돌다 갑자기 멈춰버렸듯 병아리는 머리가 빙그르르 돈다. 처음 타는 뱃멀미같이, 창자가 뒤틀리고 구역질을 한다.

한낮은 벌써 여름 같다. 점점 길어지는 낮만큼 밤은 짧아간다. 닭장을 빙 둘러선 벽오동 나뭇가지가 꽃잎을 떨구어 내고 눈곱만큼 작은 열매를 매달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가 곪아 떨어져 소리를 내며 땅에 도르르 구른다. 오동잎도 심한 빈혈 증세를 보인다.

닭장은 밤에도 전등을 켜 환하게 밝다. 건너편 닭장의 암탉은 자정이 지나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철망 속을 맴돈다. 노란 병아리도 알싸한 냄새가 풀풀 나는 옥수수알갱이를 쪼아 먹었다.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

“아마 미국에서 건너온 옥수수일 거야.”

입이 뾰족이 나온 철망 속 병아리의 투덜거림을 몸집이 가장 작은 병아리가 냉큼 받는다.

“아니야. 무항생제 국산이랬어.”

“물에서도 무슨 냄새가 나는데.”

날개가 제법 자란 병아리가 하늘을 쳐다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그날 이후 다시 날이 밝자, 똥을 누지 못하거나 설사를 하는 병아리가 점점 늘었다. 설사를 사흘 내리 하는 병아리는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게 소원이라 했다. 몇몇 병아리가 어디론가 실려 간 뒤부터는 희끄무레한 가루 범벅의 작은 알갱이가 모이로 나왔다. 노란 병아리는 아침 안개 같은 희뿌연 연기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푸른 집 농장, 닭장 지기가 하루도 빠짐없이 병아리 주위를 맴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재미로 살아가듯 검은 안경을 쓴 지기가 밤마다 철망을 들쑤시고 다닌다. 어떤 날은 뭘 찾거나 없는 것을 새로 만들려는 듯하다. 혹 뭔 올가미를 씌울 만만한 이를 물색하듯, 철망 속을 샅샅이 훑는다. 노란 병아리는 목이 빳빳한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감고 조는 척한다.

검은 색안경이나 흰 마스크를 쓴 이들의 손에 철망을 떠난 병아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장 혹은 땅속에 산 채로 묻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란 병아리는 운명이려니 하며 입 다물고 눈 감아버리고 싶다. 급기야 견디다 못한 암탉이 다시 밤낮 한목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안녕들 하신가요?”

“닭치기 그만두라. 우리가 달구새끼로 보이나?”

“…”

닭장 지기도 별일 아니란 듯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다. 개 같이 축 늘어진 배를 땅에 깔고 누어 떨어지는 게 뭐 없나 눈을 까집어 하늘을 치켜보던 그들이 비시시 일어나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 보고 후 지시를 받아 조치해야 합니다. 이러다간 닭장이 텅텅 비게 생겼습니다.”

“눈치 없이…우리 목이 먼저 날아갈 거요. 말씀이 내려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는 게 상책이요.”

닭장 지기가 자발적 생각을 못 하게 하는 파우더를 먹은 영혼 없는 좀비 같다. 암수가 서로서로 엉덩이를 맞대 한몸이 되어 쌍두머리 하나는 북쪽으로, 다른 하나는 남쪽을 향해 바동거린다. 그들은 숨을 가다듬더니 다시 낑낑댄다.

“낡은 닭장을 새것으로 바꿀 찬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찬스는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라 창조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차라리 몽땅 물에 빠져버리면 보험금이 나오고, 그 보험금으로 더욱 큰 새것으로 바꿔버리면 한 번에 왕창 빨아버릴 수도 있잖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영원한 닭치기가 가능한 창조아이디어입니다. 불특정 누군가는 여름 복날 개가 될 테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 길은 그 방법밖에 없어요.”

개가 좀비와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다. 땀을 흘리며 눈치만 보는 그들 가운데 제법 똑똑한 좀비도 두엇 있다.

“닭이 저토록 울어대니…아우성을 일시에 틀어막다 보면 파생한 부수입도 꽤 쏠쏠하게 들어오겠지. 요즘은 파생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니까.”

신상 파생상품을 닭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그는 영혼 없는 좀비가 아닌 개의 두뇌를 가진 듯 똑똑해 보였다.

“껍데기를 새로 포장하는 닭장개조는 한 방에 효과를 몇 배 뻥튀기 할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을 찾아야 합니다.”

“…”

말을 마친 늙은 개가 입 밖으로 축 늘여 떨인 긴 혀끝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숨을 할딱거린다. 그들을 좀비나 개라고 하기에는 사실 무리다. 어찌 보면 닭장을 충분히 지킬만한 준비된 대통령, 능력자다.

노란 병아리가 눈을 감는다. 날마다 꾸는 꿈이지만, 눈만 감아도 언제나 꿈을 꾸었다. 오늘이 절망스럽고 또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을 때는 지나온 과거를 되씹는 것만이 현재를 버티는 유일한 힘으로 병아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김없이 다시 꿈을 꾼다.

어미의 품속에서 세상 밖을 처음으로 내다보던 날이었다. 처음으로 쪼아본 흙 속의 지렁이,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본 물웅덩이, 천둥과 번개에 놀라 숨은 엄마 품속의 따뜻함, 온 가족이 합심하여 소리 없이 나타난 족제비가 쳐들어온 날 밤, 달착지근한 연한 풀잎, 건너야 할 웅덩이를 앞에 두고 발을 동동거리며 애태운 날들…온 가족이 다 함께 웅덩이에서 밤늦도록 벌레를 찾아다니곤 했다. 장차 크면 좋아하는 이와 사랑도 하고 아이들도 낳아 먹이를 찾아 아이들과 흙을 쪼아보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다소 소란스러운 기척에 노란 병아리가 눈을 떴다. 태풍이 불어오듯 우우~ 바람 소리가 난다. 그 순간 철망이 뒤뚱거리며 기울고 있다. 철망 속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들었지만, 가슴이 콩콩 뛴다. 철망 자물통은 팔달령 장성의 관문이며 망루만 하다. 밖에서 차벽을 허물지 않으면 손에 쥔 열쇠, 선거권이며 주권이란 말은 한낱 개 똥닦개만도 못해 안에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인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장성을 진시황제가 하나로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완성했듯 17부 5처 16청 수많은 공무장성을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자본권력이란 차 벽 돌담으로 하나로 연결한 조선 만리장성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흉노족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이 편안하게 농사를 짓게 한다며 쌓은 장성, 2천 년 전 수천만의 사람이 되레 노역에 끌려가 죽은 시체를 바로 묻은 세계에서 가장 큰 뫼인 만리장성은 21세기에도 조선에서 여전히 성전으로 건축 중이라 그 내려오는 이야기의 하룻밤이 아니라 석 달 열흘 동안 매일 밤 황제접대로도 꿈과 희망을 되찾는 꿈조차 꿀 수 없을 것 같다. 3포, 5포…7포 세대의 만리장성 시대란 말이 생각 는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희망, 꿈…수천만의 n포를 돌담으로 쌓은 뉴만리장성 시대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가만히 있으라.”

늘 들어온 말이다. 하늘에서도 들려온다. 그는 목을 길게 내밀어 밖을 내다본다. 아무래도 믿고 따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검푸른 파도가 한입에 통째로 삼켜버릴 듯하다. 닭장에서 배운 대로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란 병아리는 입을 앙다물고 두 어깨에 힘껏 힘을 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듯 간이 오그라들어 숨 쉴 수 없다. 입은 꽉 앙다물었지만, 자꾸만 물속 아래로 아래로만 빨려들었다. 다시는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잠시 후 그가 두 팔을 벌려 펴고 죽기 살기로 몸부림친다. 다시 발끝에 힘을 줬다. 땅을 치고 가볍게 튀어 오른 공처럼 꽃잎이 물속에서 떠오른다.

간신히 물 밖으로 목을 내민 그가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철망 밖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노란 병아리를 향해 소리친다.

“뛰어내려, 빨리!”

“기다리래….”

그들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눈꺼풀이 힘없이 아래로 내려온다. 무거운 눈꺼풀이 그의 눈을 감겨버리고 만다.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심한 진저리를 친다. 친구들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살려달라는 아우성도 들을 수 없다. 태풍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남김없이 쓸고 갔듯 적막감이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의 날갯죽지가 물에 흠뻑 젖었다.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몸에서는 피가 멈춰버린 듯하다. 하늘이 노랗다.

닭장 지기도 당황한 듯 우왕좌왕이다. 모두 서로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하는 가운데 왕실장지기가 입을 열었다.

“닭이 예상보다 많이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나요? 돌발 상황으로 우리끼리라도 입을 맞춰야 합니다.”

처음 입을 여는 게 어렵지만, 한 번 입이 뚫리기만 하면 그다음은 쉽게 벌어지는 조개같이 검붉은 털 숲 속의 늘어진 입이 위아래로 벌쩍벌쩍 벌어졌다.

굳게 잠긴 옥문같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주인이 비로소 입을 연다. 닭장 하나가 물속으로 사라진지 정확하게 7시간이 지난 뒤다.

“아직 선거 일이 많이 남아있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북쪽과 겹치지 않게 시간을 앞당긴 것은 좋지만…. 여러분이 앞으로도 줄곧 자랑스러운 닭장 지기로 남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가 걸린 중차대한 일임을 항상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문이 열렸다. 늙은 암소 등에 억지로 올라타 시루 다 맥없이 슬그머니 땅에 내려온 그 개의 거품 문 입에 눈길이 쏠린다.

“병아리가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방금 별일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노란 병아리는 노란색으로 잘 보일 것인데, 그게 안 보인다는 거야?”

“예. 그게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잠수함이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마침 그때…닭장이 너무 빨리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져…천재지변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생각할 게 뭐 있는가. 통째로 수장됐으면 다음 단계를 실행하는 게. 뺏긴 놈이 죄가 더 크듯이 옆구리 받친 놈이 잘못이지 않은가. 잠수함은 잠수해서 다니는 배지요. 다른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입을 맞추고…흔적을 남기지 않도록…오로지 자신의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시오.”

낮 동안 뒷방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라 그 발정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듯 얼굴빛이 석양의 붉은 노을빛을 뛰었다. 아닌 장마철에 7시간 동안 비밀스럽게 내린 소낙비에 흠뻑 젖은 철쭉꽃 빛 붉은 입술 밖으로 나온 그의 말을 쫓아 왕실장지기가 직접 나서 화끈하게 다시 맞출 입을 즉시 불러 모았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 봅니다. 영구닭장 주인을 만들 기회입니다. 사건을 축소하고 덮어 가는 것 보다, 생각지도 못한 더 큰 일이 일어나면 앞서 일은 자동으로 덮어지게 마련입니다.

북쪽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차선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창조아이디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영광·울진·고리의 꽃놀이패, 우리의 손안에 든 황금패가 아니겠습니까. 핵발전소는 마르지 않는 샘이지요. 대개조 비아그라 주사를 놓아서라도 더욱 크게 더욱 깊이 쪼오옥 빨아야 할 마지막 남은 황금밭의 강원도 감자 씨알만 한 황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지요.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꽃놀이는 받아쓰기 시험에 합격한 백 점짜리 종편 두셋이면 됩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닭장을 보위하며 구원할 백점짜리 기래기라 불리기도 하는 앵무새가 오래전부터 따라다니지 않습니까.

이미 지난 닭장 일은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해결될 것….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대개조 실행을 앞당겨야 합니다.”

늙은 호위무사 왕실장지기가 열변을 토한다. 그의 창조능력은 들쥐며 박쥐, 쥐박이를 능가하다. 나이로 봐서는 망령이 날 듯하지만, 사실 오래전에 완벽하게 검정된 그의 창조본능을 세월이 흘러도 천하에 흉내조차 낼 자가 없다.

노란 병아리는 그 개조 프로젝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어림짐작할 수 없다. 보이는 것, 보라고 내놓은 것만 보고 들을 수 있어야 앞으로 알을 낳을 수 있다고 그동안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닭장개조는 병아리도 함께 할 때 더욱 크게 된다 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위한 무슨 개조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바다 건너에서 이러쿵저러쿵, 물증도 있고 심정도 서기에 그 닭장 빨대질을 훤히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통에 알쏭달쏭 오리무중이다.

북악산 중턱, 노란 병아리가 쫑쫑 뛰어오른 너럭바위가 반들반들하다. 한눈에 발아래가 내려보인다. 처음 보는 큼직한 닭장 지붕이 붉다 못해 검푸르게 눈앞에 아른거린다. 빨대를 문 닭장 지기 입술의 붉은빛이 눈부시다. 쪼오 옥, 소리가 나도록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대는 빨대를 물은 입이다. 그의 속살 검붉은 입이 더욱 크게 보인다. 노란 병아리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빨대 입을 내려다볼수록 지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처음, 어쩌다 빨대를 더욱 키우는 입놀림을 먼발치서 바라봤을 때만 해도 흥분됐다. 그때만 해도 빨대는 자본주의 꽃이라 믿었다. 더 깊이 더 자주, 헉헉하니 소리 나도록 밤낮없이 요리조리 빨아주길 바랐다. 빨대를 문 입을 볼 때마다 한 번 더, 빨아 달라 애원하며 매달렸었다. 글로벌한 빨대는 더욱 황홀하게 만들 수 있다 했다. 빨대의 세계화를 위해 뭐든 몰아줘 한없이 빨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어느 날부터 두툼한 입술로 무장한 입이 가랑이 틈새에 큼직한 빨대를 꽂아 쪼르르 쪽쪽 빨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쥐새끼같이 야금야금 갉아먹고 빨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요즘 들어 망원렌즈 같은 최첨단 도구 없이, 맨눈에도 보인다. 입에 문 빨대는 인정사정없이 병아리를 빨고 있다. 양심도 없어 남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빨고 있다. 빨 수 있는 것이면 뭐든 잠시 핥아주는 척하다 이내 게걸스러운 소리까지 내며 빨아댄다. 바로 창조경제 다운타운이다.

정신없이 빨아 입이 다 헐어버린 것 같다. 빨고 또 빨고, 얼마나 빨았는지 뭉툭한 입에 문 빨대가 뾰족하다. 조금만 더 뭉그러지면 더욱 큰 새 놈을 입에 물고 박 빡, 빨 모양새다. 그들 자신만을 위한 글로벌 창조 빨대질 이란 걸 세상이 다 눈치 채고 있다.

그때, 숲 속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산토끼다. 입을 오물거리고 있다. 여러 개의 긴 수염이 달싹거린다. 그가 큰 눈을 껌벅이며 껑충껑충 뛰어 너럭바위를 지나 노란 병아리 가까이 다가온다.

“안녕, 너 혼자야?”

“난 안녕 못해. 친구들 모두….”

토끼의 인사에 노란 병아리는 말을 하다 멈추고 그만 눈물을 흘린다.

“저기…죄다 누렁소로 갈아엎어 청보리 씨를 뿌리면 좋겠지?”

“밤말은 짭새 검새가 듣고, 낮말은 걱정원 나나 아르시에스가 보고 있다 봐야 하지 않을까? 산 넘어 북쪽에서 왔다며 잡혀갈 수 있어!”

“난 늘 싱싱한 푸른 잎을 먹고 싶을 뿐이야.”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쳐 간신히 산으로 왔어.”

“알아. 넌 운이 참 좋구나.”

노란 병아리와 토끼는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아무튼, 우리는 자나 깨나 불조심, 아니 말을 조심해야 해. 들쥐가 엿보고 짭새가 엿들어 한걸음에 달려올 수도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돼.”

노란 병아리가 다시 입을 토끼의 큰 귀 가까이 가져가 소곤거린다. 귀를 쫑긋 세운 토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큰 눈을 껌뻑인다.

“멍멍.”

“닭장 대개조…멍멍.”

개짓는 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오른다. 힘겹게 산을 오른 개소리가 바위에 부딪혀 나무둥치에 떨어지고 있다. 좀비 파우더를 핥아먹은 덩치 큰 늙은 개가 틀림없다. 교미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수캐가 덩달아 짖는다.

토끼가 두 귀를 틀어막고 있다. 노란 병아리가 보다 못해 입을 연다.

“야, 넌 바람 불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귀를 세워야지.”

토끼는 그의 타박에 잽싸게 귀를 돌려세운다.

“꼬끼오….”

이번에는 암탉 소리다. 불야성의 닭장에서 뛰쳐나온 아우성이 짓는 개 소리와 뒤섞여 토끼의 귀를 파고든다. 토끼가 귓구멍을 틀어막아 보지만, 닭장 지킴이의 컹컹거리는 소리까지 여지없이 귓속을 파고들어 가슴까지 울렁울렁 걸린다. 토끼가 눈물만 흘리고 있는 노란 병아리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니?”

“글쎄. 나는 기다리라는 말을 불복했어. 물이 차오르고 있는 닭장을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느낌과 생각에 당장 뛰어내려야 한다는 판단을 했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만, 어쩌면 순종하고 복종하지 않았다고 다시 끌려갈지도 몰라. 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트린 죗값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어.”

“그렇구나!”

노란 병아리가 눈가의 눈물을 날갯죽지의 털로 닦는다. 토끼는 하얀 앞니를 드러내 놓고 입을 우물거리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들 손에 이끌려 철망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나는 믿었지. 장차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키워 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어. 알을 안전하게 더 많이 낳을 수 있도록 닭장을 대대적으로 개조한댔어. 또 밖에서는 북한 족제비가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고 있으므로 안전을 위해 철망을 겹겹이 쳤다 했어. 난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양의 탈을 쓴 늑대,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눈치를 챘어. 알을 시장에 내다 팔은 돈으로 닭장은 점점 더 커 갔지, 심지어 하루에 알 두 개를 낳을 수 있는 암탉은 더욱 큰 닭장으로 비싼 값에 팔려간댔어. 말로는 우릴 위한다 했지만, 속으로는 죽을 때까지 더 많이 돈을 벌어주는 알을 낳는 닭일 뿐이었던 거지. 한마디로 닭장 개조는 자신만을 위한 점점 더 큰 도가니를 만드는 빛 좋은 개살구 같았지.

모든 사실을 안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닭장 밖 방죽을 향해 뛰어내렸지. 그들에게 알로만 보이는 나를 믿을 수 없었어. 나는 오로지 그를 위해 알을 낳아야 하는 암탉이 되는 게 싫었어. 그런 어느 날부터는 나는 날마다 닭장 밖의 방죽 물속이나 숲 속을 걷는 꿈을 꾸기 시작했지.”

노란 병아리는 눈물을 멈추고 차분하게 말한다. 한동안 듣고만 있던 토끼도 혼자 가슴 속에 담아둔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낸다.

“너의 말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듣고 보니 닭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알을 파는 시장이 돌아가는 쳇바퀴를 조금은 알 것 같아. 수시로 바뀌는 닭장 교육과정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들 입맛대로 손쉽게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배불릴 방법으로 수시로 허울만 번들거리는, 닭장 병아리를 위한다는 새교육과정을 또 새새 교육과정으로 ‘새’를 하나 더 붙여 개정한다는 거야.

하지만 너는 병아리, 나는 토끼야. 이미 결정돼버린 현재와 미래의 운명 아닐까. 이미 너는 닭장의 닭이야. 닭장 닭이 산 꿩 될 수 없어. 주인만이 곳간을 대대로 차곡차곡 쌓을 수 있지. 제아무리 큰 닭장 독 속에 누구나 빨대를 꽂을 수 없다는 현실 말이야. 그의 말대로 내가 창조 빨대를 덩달아 입에 물고 빨아 봐도 핫바지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이지. 봉사 횃불 잡듯,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게 좋겠어.”

“아니야. 난 무지무지하게 큰, 자꾸만 커가는 닭장 도가니를 깰 수 있어. 그 도가니가 깨지면 빨대는 무용지물이 될 거야. 빨대로만 물을 마실 수 있는 도가니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을 거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자기가 만든 자기들만의 프레임,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을 뿐이지. 하나의 과정만을 보고 영원할 것이라 말하지. 도도새가 세상에서 사라졌듯 도도하게 큰 도가니는 필연적으로 깨지게 돼 있어. 도가니가 깨진 사금파리에는 덩치 작은 이들이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물이 나뉘어 담기게 될 거라 믿어.

꿈꾸는 미래, 그 꿈을 위해 조금씩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그 꿈은 나의 현재가 되고 또 하나의 역사가 되는 게 순리야.”

“못 먹는 밥에 재 뿌리듯 말이냐? 하지만 바벨탑이 무너지듯 독이 깨질 때까지 우리도 기다리자.”

토끼가 자신이 한 말이 좀 쑥스러운 듯 두 앞발을 들어 입가를 문지른다.

“바보 멍청이. 넌 싸리나무 밑동을 깔아 앞니를 다듬지. 오로지 지금 한순간만을 위해 나무를 깔아 이를 문지르는 게 아니야.”

“그래. 그게 어떻다고.”

노란 병아리의 멍청이란 말에 토끼가 어이없다는 듯 불퉁하게 내뱉는다. 토끼의 입가에 난 긴 수염이 위아래로 파르르 떨고 있다. 노란 병아리는 그런 토끼를 보며 다시 말문을 연다.

“도가니 안의 물은 오로지 큼직한 빨대나 바가지로 힘센 놈만이 빨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그림 속 마시멜로랄까.”

“그렇구나. 맴 몸뚱이로 독 안에 머리를 처박다 풍덩 빠져 죽은 개미를 나도 봤어. 난 그래서 바다보다는 강, 강보다는 시냇물이 좋아. 산골짜기의 물이 최고야. 둑을 쌓아 더욱 깊어졌다는 사대강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 난 냄새나는 죽은 강물은 싫어.”

토끼가 하는 말을 노란 병아리가 입을 쭉 내밀고 듣다가 펄쩍 뛴다.

“고맙다, 친구야. 바로 그거야!”

흥분을 가라앉힌 노란 병아리가 냇가로 아장아장 걸어 내려간다. 숲길 사이로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르고 있다. 작은 돌을 밟고 서서 물 한 모금 마신다. 하늘에는 구름이 간간이 흐르고 있다. 그가 다시 입에 물을 가득 담는다. 오랜만에 고개를 쳐들어 보는 하늘에 이름 모를 새가 무리 지어 날고 있다.

‘꿩, 토끼, 새끼 고란이…. 누구든 마실 수 있는 시냇물이다. 큰 도가니의 물을 여러 개의 작은 항아리에 나누어 담으면 개미도 물을 마실 수 있다.’

노란 병아리가 혼잣말하다 짐짓 놀란다.

“어. 병아리가 있네.”

그가 물속에 나타난 병아리를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본다.

“토끼야, 이리와 봐. 물속에 나와 닮은 병아리가 나를 따라 하고 있어. 따라 잽이 병아리인가 봐.”

“다시 잘 봐. 하고 잽이 새신랑 토끼일 거야. 내가 냇가에만 오면 어김없이 들이대는 하고 잽이야.”

노란 병아리는 물속에 토끼와 사이좋게 나란히 있는 병아리를 보고 웃는다.

“누가 오나 봐?”

갑자기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운다. 하얀 찔레꽃 덤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크고 작은 소리가 함께 어울려 물가로 점점 가까이 내려오고 있다.

“깜짝 놀랐네. 까투리네 가족이잖아.”

토끼가 큼직한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안녕, 너희는 알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니?”

노란 병아리가 새끼 꿩에게 대뜸 묻는다. 새끼 꿩은 토끼와 노란 병아리를 둘레둘레 쳐다만 본다.

“노란 병아리야, 너는 어떻게 여길 왔어?”

까투리가 신기하다는 듯 노란 병아리에게 묻는다. 토끼도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 궁금한 듯 귀를 쫑긋 세운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요.”

노란 병아리는 참새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

“미안. 내가 너의 아픈 곳을 찔렀구나.”

까투리가 노란 병아리 가까이 다가가 눈물을 닦아준다.

“울지 마, 병아리야.

너도 언젠가 나같이 새끼와 함께 물도 마시고, 이산 저산 돌아다니며 목청 끝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볼 수 있을 거야. 힘을 내.”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참아 닭장에서 혼자 탈출했다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이며 친구들, 엄마도 보고 싶어요.”

“그럼, 아직 닭장에 갇혀있니?”

“아녜요. 내가 갇힌 닭장이 깊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아 모든….”

그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한다.

“쯧쯧, 어쩌다가?”

까투리가 울먹이고 있는 그를 끌어안아 자신의 날개 속에 품는다. 솔숲에서 불어온 바람 소리가 시냇물을 건너고 있다. 수꿩이 까투리를 찾는 소리가 위신 없이 산을 넘고 있다. 메아리가 눈치 없이 산골짝마다 들쑤시고 다니며 꿩의 구애를 퍼 나른다.

“슬플 땐 충분하게 슬퍼하고, 분노할 때도 끝없이 분노해야 한단다. 지금은 참지 말고 슬퍼하고 분노해라!”

산 꿩이 큰 덩치와 달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는 엄마의 품속 같은 꿩 날개 속에서 듣고 있다. 그가 나쁜 꿈을 꾸다 놀란 듯 몸을 부르르 떤다.

“이제 다 울었니?”

그가 머리를 날개 밖으로 내민다. 새끼 꿩이 뒤뚱뒤뚱 맴돌던 걸음을 멈춘다.

아침부터 앵무새가 산등성이에 나타나 산골짝을 울린다. 상수리 나뭇잎 사이로 뾰족한 입을 내밀어 쉬지 않고 앙알거린다. 그는 얼굴이 파랗고 목이 약간 노란색을 띤 양계장 닭치기가 사육한 받아쓰기 백 점짜리다. 던져주는 먹이를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어 닭치기가 애지중지하는 앵무새는 땅딸막한 몸집이지만 목소리는 산골짝을 울리고도 남는다.

“불, 불을 꺼라. 불 불 불….”

앵무새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산을 울린다.

“불을 끄고 집에 가, 알 알 알…알을 낳아라.”

토끼가 상수리 나뭇잎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앵무새를 쳐다보며 내뱉는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 보고 알을 낳으라니!”

노란 병아리와 새끼 꿩이 목을 길게 빼 밑동이 둥글둥글하고 키가 큰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본다.

“엄마, 불 불…알, 불알이래. 앵무새는 낚싯바늘 끝의 지렁이 같은 놈이야.”

“설마 원자력 발전소에 난 불을 끄라는 소리는 아닐 거야. 아마 도토리를 보고 불알 타령을 하는가 보군. 눈에 보이는 게 모두 불알로 보이는 것 같구나. 저놈도 필시 영혼 없는 좀비일거야.”

까투리가 꼬물꼬물 묻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달랜다. 어둠이 골짜기에서 산등선으로, 또 산 아래로 동시에 타고 내려간다. 물이 점점 크게 소리 내어 흐르면서 앵무새의 타령을 집어삼킨다.

밤바람이 잠 못 이뤄 뒤척인다. 밤꽃 향기가 어둠 속에 팔딱인다. 보름달이 산 넘어 얼굴을 내민다. 하늘의 별이 하나둘 땅으로 내려와 꽃으로 피어난다.

급기야 철망을 뛰쳐나온 암탉과 노란 병아리가 힘을 합하여 닭치기를 짚단 쌓듯 몰고 있다. 악귀를 쫓는 정월 달집처럼 샛노란 불길이 순식간에 닭장을 집어삼킨다. 더욱 큼직하게 겉치장한 닭장이 훨훨 타오른다. 징, 징, 징…징소리와 깨갱, 깨갱…괭가리 소리가 훨훨 타오르는 달집을 신나게 빙빙 돌고 있다. 황소울음 같은 징소리가 귀태 엿 놈의 귀 코 입…씨구멍 똥구멍, 구멍이란 구멍마다 죄다 파고들어 울려댄다. 북악산자락 닭장 마당의 알알이 빛나는 불꽃, 바람 따라 파도를 타듯 일렁이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별이 하늘 가운데 총총하게 들어서고 있다.

멍멍…, 불에 여기저기 탄 검둥개가 마당에 발라당 나뒹군다. 개의 입에서 흰 연기를 내뿜는다. 닭치기의 구멍이 숭숭 뚫린 치맛자락이 꿀꿀 거리며 하늘에 펄럭인다. 도가니 터지는 소리가 펑펑, 새벽하늘을 울린다. 만리장성 돌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난장 징소리 같다.

“안녕, 헬 만리장성이여!”

닭이 작별을 고하듯 두 날개를 퍼덕이며 새벽을 알린다. 아침 해가 얼굴을 붉히고 발 빠르게 산릉선을 타고 있다. 이른 아침 이슬에 함초롬 휘적신 풀잎이 햇살을 한 아름 품는다. 노란 병아리가 들꽃 향기에 취해 코를 벌름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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